
[ 핵심 요약 ]
- 상황: 성범죄 혐의를 받는 사람이 사건 직후 피해자에게 "잘못했어", "미안하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등의 말이나 메시지를 보낸 경우
- 쟁점: 이러한 사과가 범행을 인정하는 자백으로서 유죄의 증거가 되는지
- 결론: 법원은 사과의 경위, 대화의 전후 맥락, 사과 당시의 상황을 종합하여 판단하며, 피해자의 추궁이나 신고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과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면 사과만으로 유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 작성: 채다은 변호사 (형사전문변호사, 강간·강제추행 등 성범죄 사건 다수 수행)
1. '미안하다'는 말이 자백처럼 보이는 이유
성범죄 사건은 대부분 단둘이 있는 공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피해자의 진술 외에 객관적인 증거가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수사기관이 주목하는 것이 사건 직후 당사자 사이에 오간 대화나 메시지입니다.
특히 피의자가 피해자에게 "잘못했어", "미안하다"라고 말한 녹음이나 사과 메시지가 있다면, 수사기관은 물론 재판부도 이를 범행을 인정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실제로 사과 메시지 때문에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반드시 잘못을 인정해서만 사과하지는 않습니다. 상대방이 갑자기 화를 내거나 울면서 따질 때, 신고하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직장에서의 불이익이 걱정될 때 일단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사과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법원 역시 이 점을 고려하여 사과의 의미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2. 판례① 강간미수 – "잘못했어"라는 반복된 사과에도 무죄
서울고등법원 2024. 2. 7. 선고 2023노3369 판결
피고인은 SNS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피해자를 알게 된 후, 모텔에서 처음 만난 피해자와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검사는 피고인이 대화 도중 갑자기 피해자를 침대에 밀쳐 눕히고 간음하려 하였으나, 피해자가 몸을 비틀며 저항하고 인터폰으로 모텔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바람에 미수에 그쳤다며 강간미수 혐의로 기소하였습니다.
이 사건에서 피해자는 112 신고 후 피고인과 나눈 대화를 녹음하였는데, 그 녹음에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항의에 계속해서 "잘못했어"라고 사과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검사는 이를 피고인이 범행을 수긍한 근거로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1심과 항소심 모두 무죄를 선고하였고, 사과 부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습니다.
피해자는 모텔 직원을 통해 112 신고를 한 후, 피고인과 나눈 대화를 녹음한 사실이 있는바, 피해자는 '아니, 나 아까 진짜 무서웠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아니 진짜 이렇게 강압적으로 할 수가 있어?', '상대방이 싫다면 안 하는 게 맞는 것 같거든'이라고 말하고, 이에 피고인은 계속해서 '잘못했어'라고 말하여 피해자에게 사과한다. 그런데 위 대화의 전체적인 내용, 맥락에 당시의 정황 등을 보태어 살펴보면, 피고인의 사과 역시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갑작스러운 피해자의 태도와 경찰에 신고가 이루어진 상황에서 피해자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자 일단 미안하다고 이야기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 이후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미안하다는 취지로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있으나, 이를 보더라도 피고인이 피해자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폭행 또는 협박하였다는 취지의 내용을 유추하기는 어렵다.
법원은 이와 함께 피해자가 침대에 눕혀진 경위에 대해 "안아서 눕혔다", "팔을 잡아당겼다", "밀쳤다"로 진술을 계속 바꾼 점, 현장 사진상 테이블 위 음식물이 흐트러지지 않아 저항의 흔적을 찾기 어려운 점, 피고인의 진술이 자신에게 불리한 부분까지 포함하여 구체적이고 일관된 점 등을 종합하여 공소사실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3. 판례② 강제추행 – "제가 미쳤었나 봐요"라는 메시지에도 항소심에서 무죄
서울중앙지방법원 2025. 7. 16. 선고 2024노3990 판결
공공기관 간부인 피고인은 회식 후 술에 취해 건물 계단 난간에 앉아 있던 직원에게 입을 맞추고 가슴을 만지고 뒤에서 껴안았다는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피해자는 사건 당일 저녁 피고인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메시지를 보냈고, 피고인은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제가 미쳤었나 봐요.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등 범행을 인정하는 듯한 답장을 보냈습니다. 1심은 이 메시지를 주요 근거 중 하나로 삼아 유죄를 선고하였습니다.
그러나 항소심은 1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하며, 사과 메시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습니다.
피해자가 이 사건 발생일 저녁 피고인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자 피고인이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제가 미쳤었나 봐요.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등의 이 사건 범행을 인정하는 듯한 답장을 보낸 사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피고인은 위와 같은 메시지를 보낸 경위에 대하여, 수사기관과 원심법정에서 일관되게 '팀장으로부터 피해자가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일단 달래려고 사과한 것이지 추행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 (중략) 공공기관에서는 성범죄 신고가 접수되면 우선 징계처분을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는 취지로 주장하였는바,
ⓐ 팀장은 원심법정에서 이 사건 당일 피해자를 만나 신고하겠다는 말을 들은 후 피고인을 만나 이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눈 사실이 있다는 취지로 진술한 점,
ⓑ 피고인이 처음에는 '제가 어제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죄송합니다.'라고 다소 모호하게 답장하며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피해자가 '미안하고 죄송합니다가 다예요?', '진심으로 인정하시고 사과하시면 그냥 넘어가려고 했어요' 등 구체적인 사과를 요구하자 잘못을 인정하며 반성한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낸 점,
ⓒ 피고인은 당시 공공기관에서 근무하고 있어 피해자가 사건 접수를 할 경우 징계 등의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고 실제로 피고인이 이 사건으로 인하여 면직처분을 받은 점 등에 비추어 보면,우선 피해자를 달래 사건이 접수되는 것을 막고자 사과하고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피고인의 주장은 충분히 수긍할 만하다. 따라서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메시지를 보낸 사실만으로 피고인이 이 사건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피해자를 추행하였음을 인정하기는 어렵다.
항소심은 사과 메시지 외에도 화질개선 CCTV 영상상 입맞춤이나 가슴을 만지는 장면이 명확히 확인되지 않는 점, 피해자의 니트에서 남성 DNA가 검출되지 않은 점, 만취한 피해자가 부축 과정의 신체 접촉을 추행으로 오인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점 등을 함께 고려하였습니다.
4. 법원이 사과를 자백으로 보지 않은 판단 기준
두 판례를 종합하면, 법원은 사과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보다 '왜, 어떤 상황에서, 어떤 표현으로' 사과했는지를 중요하게 살핍니다.
(1) 사과의 경위: 피해자가 먼저 강하게 추궁하거나 구체적인 사과를 요구하여 이에 응한 것인지, 스스로 자발적으로 잘못을 고백한 것인지
(2) 사과 당시의 상황: 경찰 신고가 이미 이루어졌거나 신고하겠다는 말을 들은 직후인지, 직장 내 징계 등 불이익을 우려할 사정이 있었는지
(3) 사과의 표현: 공소사실의 구체적인 행위(폭행·협박, 특정 신체 부위 접촉 등)를 인정하는 내용인지, 단순히 '미안하다', '잘못했다'는 포괄적인 표현인지
(4) 사과 경위에 대한 일관된 설명: 수사 단계부터 재판에 이르기까지 사과한 이유를 일관되고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는지
(5) 다른 증거와의 부합 여부: CCTV, 현장 사진, 감정 결과 등 객관적 증거가 피해자 진술과 맞지 않는지
결국 사과의 의미는 그 문장만 떼어 놓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사과 전후의 대화 전체와 당시 상황 속에서 판단됩니다.

5. 채다은 변호사의 대응 방식
채다은 변호사는 성범죄 사건을 상담하며 사과 메시지나 녹음이 이미 증거로 제출된 경우를 자주 접합니다. 이러한 사건에서 채다은 변호사는 다음과 같은 점에 집중합니다.
첫째, 사과 부분만이 아닌 대화 전체를 확보합니다. 수사기관에 제출된 캡처나 녹음 일부만으로는 사과의 맥락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사과 직전 피해자가 어떤 말을 했는지, 처음 반응이 어떠했는지가 사과의 의미를 바꾸는 핵심이 됩니다.
둘째, 사과에 이르게 된 경위를 처음부터 일관되게 정리합니다. 두 판례 모두 피고인이 수사기관에서부터 사과 경위를 일관되게 설명한 점이 받아들여졌습니다. 첫 조사에서의 진술이 이후 재판에 그대로 영향을 미치므로, 조사 전에 사실관계를 정확히 정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셋째, 사과 외의 객관적 증거를 적극적으로 검토합니다. CCTV 화질 개선, 현장 사진 분석, 감정 신청 등을 통해 피해자 진술과 객관적 정황의 불일치를 밝히는 것이 무죄 판단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상황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 사과를 하면 안 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과를 통해 다툼을 원만히 해소하는 것은 매우 현명한 일이며, 사과를 잘하는 것은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채다은 변호사 역시 무조건 사과를 피하라고 조언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사과를 할 때에는, 지금 정확히 어떤 부분에 대해 사과하는 것인지 짚어서 표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든 점, 오해를 살 만한 행동을 한 점에 대해 사과하는 것과, 상대방이 주장하는 행위 전체를 인정하며 사과하는 것은 법적으로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추후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경우, 덮어놓고 사과한 모습은 상대방이 주장하는 모든 혐의를 인정한 것처럼 인식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위 판례들은 다행히 사과의 경위가 받아들여져 무죄가 선고되었지만, 사과의 맥락을 설명하고 입증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채다은 변호사는 "사과는 관계를 회복하는 좋은 방법이지만, 법적 분쟁의 소지가 있는 상황이라면 무엇에 대해 사과하는지를 분명히 하시는 게 필요할 수 있습니다. 이미 사과 메시지를 보냈다면 그 경위를 정확히 정리해 두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라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6. 자주 묻는 질문
Q. 피해자에게 사과 메시지를 보냈는데, 무조건 유죄가 되나요?
A. 그렇지 않습니다. 법원은 사과의 경위와 전후 맥락, 당시 상황을 종합하여 판단합니다. 피해자의 추궁이나 신고 상황 때문에 일단 사과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면 사과만으로 유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Q. 1심에서 사과 메시지 때문에 유죄가 나왔습니다. 항소해도 의미가 있을까요?
A. 위 강제추행 판례처럼 1심에서 사과 메시지를 근거로 유죄가 선고되었으나, 항소심에서 사과 경위와 객관적 증거를 다시 검토하여 무죄가 선고된 사례가 있습니다. 사건 기록을 면밀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Q. 피해자가 사과하면 넘어가겠다고 합니다. 사과해야 할까요?
A. 사과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어떤 표현으로 무엇에 대해 사과하는지에 따라 수사와 재판에서 불리한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메시지를 보내기 전에 법률 전문가와 상의하시는 것이 안전합니다.
7. 맺음말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에게 한 사과는 흔히 자백으로 읽히지만, 법원은 사과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유죄를 단정하지 않습니다. 피해자의 추궁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사과한 정황이 있는지, 어떠한 표현으로 사과했는지는 그 사과가 자백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채다은 변호사는 사과 메시지가 있는 사건일수록 대화 전체의 맥락과 사과 경위를 처음부터 정확하게 정리하는 것이 결과를 좌우한다고 강조합니다.
● 작성자: 채다은 변호사
강간·강간미수·강제추행 등 성범죄 사건, 사과 메시지·녹음 등 증거 대응, 성범죄 무죄 변론 및 항소심 상담
